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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사마르칸트 (Samarkant)

[우즈베키스탄 - 사마르칸트5] 다니엘 영묘 & 울루그벡 천문대 & 이쉬라트하나 사원

by 떠나볼까 202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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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6 일요일 (여행 10일차)

다니엘 영묘 (Prophet Daniel Mausoleum)
구약시대 4대 예언자 중 한 명인 다니엘의 영묘. 전설에 따르면 다니엘의 시신 중 일부를 가지고 있으면 행복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다니엘 영묘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외 다른 세 나라 (터키 (타르수스), 이란 (수사, 말라 아미르) & 이라크 (바빌론, 모술, 미크다디야 & 키루쿠크)) 일곱 도시에 있는데, 무슬림 세계에서는 이란 수사에 묻힌 다니엘 영묘가 가장 널리 인정받고 있는 장소이다. 
사마르칸트에 있는 다니엘 영묘는 티무르 제국의 건국자인 아미르 티무르가 정복 원정 당시 이란에 묻힌 다니엘의 묘를 파헤쳐 팔과 다리뼈를 이곳에 묻었는데, 매년 1cm씩 자란다는 전설이 있다.

운영시간:
성수기: 07:00-22:00
비수기: 08:00-20:00

요금:

외국인 입장료 25,000so'm
청소년 (7~16세) 10,000so'm
투어 (가이드) 10,000so'm
카메라 촬영 10,000so'm
비디오 35,000so'm
화장실 2,000so'm

 

아프라시압 박물관이 있는 아프라시압 유적지 반대편에는 성인 다니엘의 영묘가 위치해 있다. 계획대로라면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장소였지만, 울루그 벡 천문대 가는 길에 있어 방문했다.

가는 길에 카라반 동상이 있었는데, 실크로드 도시의 마스코트인 낙타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좌: 사마르칸트, 우: 중국 둔황)

 

다니엘 영묘

4대 예언자의 영묘라서 규모가 클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작았다. 아무래도 이란 수사에 있는 다니엘 영묘가 인정받는 장소여서 그런지 방문 당시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외국인 입장에서 바라볼 때 이 장소는 크게 의미 있는 장소가 아니어서 그런가 싶다.

성인 다니엘 영묘

 

무슬림 순례객이 이곳에 방문하면 묘의 가장자리를 짚고 세 바퀴를 돌며 기도한다고 하는데,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막아놔 그 장면을 보지는 못했다.

매년 1cm씩 자란다는 전설이 있다

 

영묘 옆에는 피스타치오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이전에는 말라죽었었지만 1996년 러시아 정교회 대주교 방문 후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현재는 나무 앞에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전해져 현지 관광객들이 나무를 만지며 소원을 빌고 있다.

 

다니엘 영묘 아래에는 작은 약수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흐르는 물을 다니엘의 영혼이 깃든 성수로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묘를 방문하지 않는 사람들도 빈 페트병을 들고 와 물을 떠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울루그 벡 천문대
울루그 벡 천문대 (Ulugh Beg Observatory)
티무르 제국의 건국자인 아미르 티무르의 손자이자 4대 왕이었던 무함마드 타라가이 (Muḥammad Taragay)가 사마르칸트의 황금시대인 1420년대 건설한 천문대이다. 당대 그 명성은 역사 속에서 전해져 오다 1908년 소련 고고학자에 의해 재발견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위대한 왕자'라는 의미를 뜻하는 울루그 벡은 무함마드 타라가이의 칭호였는데,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인 그가 건설한 천문대를 통해 만들어진 울루그 벡 별자리표 (Zij-i Ulugh Begh)는 정확도가 높아 당대 동양에서 상당히 명성을 얻었다. 
15세기 당시 이곳에서 관측된 항성시는 365일 6시간 10분 8초인데, 오늘날의 항성시인 365일 6시간 9분 9.6초와 비교해 대략 58초의 오차 밖에 차이 나지 않는 것을 고려하였을 때 정확도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조선 세종 시절, 오차가 심하고 사용이 불편한 것을 고려해 1433년 독자적인 역법 발명 지시로 조선의 독자적 역법 '칠정산내외편'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역법의 기초가 된 게 울루그 벡 천문대에 있는 천문표였던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인에게도 인연이 있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운영시간:
월-일: 08:00-20:00

요금:

외국인 입장료 30,000so'm
청소년 (18세 미만) 20,000so'm

 

 

다니엘 영묘에서 약 10분 정도 도보로 이동하면 울루그 벡 천문대에 도착하는데, 입구에는 당시 이슬람 문화권에서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선보인 주역, 울루그 벡 동상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에는 울루그 벡 박물관, 우측에는 울루그 벡 천문대가 자리하고 있다.

좌: 울루그 벡 박물관, 우: 울루그 벡 천문대

 

천문대는 동서양 모두 명성이 알려져 찾는 관광객이 유독 많았는데, 이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좁은 공간에서 조금씩 이동하며 천문대를 바라보았다.

울루그 벡 시대에는 천문대 양쪽 벽면 모두 반짝이는 대리석이었다는데 지금은 그 아름다웠던 위용이 퇴색돼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렇게나마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장소를 직접 볼 수 있게 돼 다행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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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안에는 천문학 관련 자료 및 기구와 함께 울루그 벡 천문대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는데, 내용이 다소 유익해 안에서 읽으면 그 당시 천문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천문대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등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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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루그 벡 천문대 전시 자료

 

중세 문명의 선도자였던 이슬람 기술은 유럽에 전달, 라틴어로 번역돼 이를 습득 및 발전하여 세계 선두주자로 될 수 있었던 반면 티무르 제국은 종교적인 이유와 군주로서의 자질이 부족해  울루그 벡 본인의 아들에 의해 살해당한 후 얼마 못 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비록 지금은 기초만 남아 있는 천문대이지만, 이를 보면서 과거 이슬람 문화가 세계에 미친 여파를 보았을 때 이질적이라 해서 흑백논리로 접근하지 말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쉬라트하나 영묘
이쉬라트하나 영묘 (Ishratkhana)
티무르 제국 마지막 술탄인 아부 세이드 미르자 (Abu Sa'id Mirza) 시기에 지어진 티무르 시대 건축물이다.
페르시아어로 '기쁨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아쉬라트하나는 일부 고고학자에 따르면 티무르 왕조의 여성을 매장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진위 여부는 아직 파악되지 않으나 아부 세이드의 장녀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다고 하며, 일부는 귀족 출신 여성의 매장지라고도 한다.
1903년 지진으로 인해 돔이 파괴된 후 복원 작업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아 한동안 폐허 상태로 방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티무르 시대 양식을 보존하고 있다.

 

울루그 벡 천문대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이쉬라트하나 영묘가 있다. 주요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지만 복원되지 않은 티무르 시대 건축물을 보고자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도착과 동시에 보인 이쉬라트하나 영묘는 한눈에 봐도 지금까지 보았던 건물과는 다르게 덜 인위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1903년 지진 발생으로 인해 무너진 돔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면 티무르 건축물의 상징인 푸른 옥색으로 인해 더 알려지지 않았을까?

현재의 이쉬라트하나
1900년 이전 이쉬라트하나 모습 (1903년 지진 발생 전까지 돔이 있었다)

 

건물 뒤편으로 가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는데, 건물 지탱 목적인지 복원 목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내부에 철봉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외관에 비해 내관은 아직 복원이 덜 된 것 같아 비교적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고, 다른 관광지와 비교해 설명도 없고 크지 않아 보는 데까지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몇 남지 않은 덜 복원된 티무르 왕조 건축물을 볼 수 있어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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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도 갈 수 있었지만 무서워서 내려가진 않았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복원되지 않은 티무르 시대의 건축물을 보고 싶다면 레기스탄 광장까지 도보로 2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기 때문에 방문을 추천한다.

 
 

위치:

○다니엘 영묘:

○울루그 벡 천문대:

○이쉬라트하나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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