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8·9일 차
목차
I. 셀추크 시내 구경
II. 이사베이 하맘(Isabey Hamam)
III. 성 요한 대성당(Basilica Of Saint John)
IV. 아야술룩 요새(Ayasuluk Citadel)
셀추크 시내 구경
트로이 유적지에서 5시간가량 이동해 저녁 8시쯤 셀추크에 도착, 늦었지만 간단하게 저녁도 먹을겸 체크인 후 셀추크 시내로 나갔다.
도시 규모는 체감상 전날 있었던 차나칼레의 1/2 밖에 안 되는 소도시라 그런지 도심에 나와도 길거리에 있는 사람이 확연히 적었다.
전날 백종원의 '배고파 이스탄불편'에서 코코레치를 보고 먹어보고 싶어 주변에서 가장 평이 좋은 아르테미스 코코레치 가게를 찾아갔다.
작은 도시라 그런지 이스탄불이나 차나칼레보다 음식 가격이 저렴했지만 맛도 있어 흡입했다.
배를 채운 뒤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오후 9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사람이 별로 없었고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는 시간이었다.
돌아가던 중 셀추크 기차역 주변에 눈에 띄는 건축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비잔틴 수도교였다.
높이 15미터의 비잔틴 수도교는 과거 북쪽의 시린제(Şirince) 계곡에 있는 물을 끌어오기 위해 설치한 수로로 셀추크 마을 중심을 통과하며 아야술룩 요새의 박해의 문으로 불리는 동문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도심 건물로 인해서인지 도심을 관통하는 기둥은 주변에 흔적만 남아 있었다.
다음 날 에페소스 고대 도시를 가기 전 도심에 있는 아야술룩 요새를 보러 가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주변 경관이 우리나라 시골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 튀르키예 시골 도시만의 도시 특색을 느꼈다.
이사베이 하맘(Isabey Hamam)
14세기 지배력이 약해진 룸 셀주크 왕조의 쇠퇴기에 베이(Bey, 튀르크계 이슬람 국가의 군사령관이나 제후 또는 지방 태수를 뜻함)가 관리하는 베이릭(Beylik, 베이가 통치하는 영토로 유럽의 공국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통치력이 강화되면서 독립된 국가로 활동했는데 그중 아이든 후국(侯國)의 베이였던 메흐메트 베이(Mehmet Bey)의 아들 이사베이 베이(Isa Bey)의 이름을 따서 건축된 셀주크식 하맘이다.
이사베이 하맘은 60-80년 동안 운영되다 15세기 중반부터 묘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셀주크 튀르크가 몽골에게 패배 후 지역 특색이 강한 14세기 당시 아나톨리아 베이릭 지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현재도 아이든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이는 왕조명에서 유래한다.
아야술룩 요새를 가던 길에 오래된 하맘이 있어 둘러보았는데, 어떠한 설명도 없었지만 다행히도 구글링 통해 과거 셀추크 투르크 건물 양식이라는 알게 되었다.
그리스·로마나 오스만 제국의 유적지만 보다 셀추크 투르크 유적지를 보게 되니 새로웠다.
아쉽게도 방치되고 있어 내부는 지린내로 가득했지만 오히려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 복원된 유적지보다 덜 인위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더 매력적으로 왔다.
이사베이 하맘을 나와 앞으로 조금만 가면 1374~1375년에 건설된 이사베이 모스크가 있다.
아나톨리아 베이릭 중 가장 오래된 모스크인데, 방문 당시 공사하고 있어 밖에서 눈으로 담기만 하고 아야술룩 성채로 이동했다.
성 요한 대성당(Basilica Of Saint John)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 중 한 곳으로 6세기 비잔틴 제국의 유시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건설된 성 요한 대성당은 사도 요한의 매장지로 여겨지는 장소 위에 지어졌다. 건설 당시 지금은 사라졌지만 콘스탄티노플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거룩한 사도 교회(현 파티흐 모스크 부지)'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십자가 모양으로 건축된 성 요한 대성당은 중세 기독교 순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한때 '십자가의 교회'라는 지위를 얻었으나 1304년 이슬람 세력에 넘어간 뒤 일부가 모스크로 사용, 1365-1370년에는 지진으로 인해 발굴 전까지 폐허 상태였다고 한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케아
바실리카(Basilica)는 로마 시대 공공의 목적으로 재판소나 관공서, 집회장 등의 용도로 사용된 지붕이 있는 대규모 건물인데, 콘스탄티누스 1세의 '밀라노 칙령' 후 세상으로 나온 기독교인들이 바실리카 양식을 사용한 성당을 만들기 시작하며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바실리카(Basilica), 카테드랄(Cathedral)과 같이 용어가 다르게 불리는 장소가 있는데, 아래와 같은 차이가 있다.
바실리카: 대성전, 역사적 사건 또는 성인들의 유해 위해 지어진 성당에 교황청에서 순례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건물에 영예로운 이름으로 바실리카 명칭 부여
*바실리카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중심으로 로마에 네 곳이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1,800여 개의 바실리카가 퍼져 있다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소바실리카(준 대성전)라고 한다.
카테드랄: 주교 관할 주교좌성당
대성당 내부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박해의 문을 지나쳐야 하는데, 이 이름은 1812년 문 위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자신의 마차 뒤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모습을 담은 프리즈(Frieze) 부조'를 영국의 워번 애비 박물관(Woburn Abbey Gallery)으로 옮길 때 사도가 박해받는 장면으로 오해하여 불려진 이름이라고 한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건설되었던 당시에는 6개 돔으로 십자형 모양을 이루는 교회를 건설하였으나 현재는 하기아 소피아와는 다르게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종교가 없는 나에게는 크게 의미 있지 않고 아야술룩 요새 안에 있어 온 장소였지만 이곳에 오면서 종교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야술룩 요새(Ayasuluk Citadel)
아야술룩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왕관의 모양을 한 아야술룩 요새는 6세기 비잔틴 시대 건설된 성벽과 탑, 아이딘 베이릭 그리고 오스만 제국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요새로, 전설에 따르면 성 요한이 복음서를 쓰며 기도한 곳으로 전해진다.
성 요한 대성당을 지나 위로 올라가면 아야술룩 요새가 우뚝 서 있다.
날씨가 흐렸지만 구름 사이로 뚫고 나온 햇빛을 통해 바라본 셀추크 하늘은 신기했는데, 신비하면서도 우중충한 분위기 속에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요새 안으로 들어오면 생각과는 다르게 온전히 남아 있는 건물은 거의 없어 황량했지만 작년 우즈벡에서 본 칼라(요새)보다는 잘 보존돼 있어 위안 삼았다.
내부는 딱히 남아 있는 게 없어 셀추크 전망을 보기 위해 오는 장소로 활용되는 것 같았다.
소나기가 그친 틈을 타 요새 위에서 셀추크 도시 전망을 바라봤는데, 날씨가 흐려 아쉬웠지만 이곳에서 본 셀추크 전망은 튀르키예 본연의 색을 잘 간직하고 있어 한동안 감상하다 다시 소나기가 내려 비 맞으며 내려갔다.
다음 목적지인 에페수스 박물관으로 바로 이동하려 했으나 비가 너무 많이 오기도 하고 롤 T1 팬으로서 4강전을 보고 싶기도 해 대성당 앞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한 세트만 보고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위치:
○이사베이 하맘
○성 요한 바실리카
○아야술룩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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