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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차나칼레 (Çanakkale)

[튀르키예 - 차나칼레1] 차나칼레 시내 구경 / 치멘릭 성

by 떠나볼까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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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7·8일 차

 

본격적인 튀르키예 렌터카 여행을 하고자 공항으로 가 렌터카를 인수한 뒤 차나칼레로 이동했다.

 

[렌터카 관련 정보는 아래 통해 확인 가능]

2023.12.11 - [튀르키예] - 튀르키예 렌터카 여행 - 인수부터 반납까지 운전의 모든 과정

 

튀르키예 렌터카 여행 - 인수부터 반납까지 운전의 모든 과정

튀르키예는 볼 곳이 많은 나라라 여행 전 동선을 짤 때부터 접근성의 문제 때문에 처음부터 렌터카를 계획했다. 한국에서는 면허증을 딴지 10년이 넘었지만 실질적으로 운전대를 안 잡은 지 3년

yunhan1087.tistory.com

 

해외에서의 첫 렌터카 여행이기도 했고 가면서 보이던 경관이 우리나라와는 다르기도 해 한 시간 정도는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차나칼레로 이동하는 날은 튀르키예의 국부인 아타튀르크의 서거일이기도 해 튀르키예 국기가 깃면 너비만큼 아래로 내려와 펄럭이고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3시간쯤 달리면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인 차나칼레 대교가 나온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이 차나칼레 대교는 우리나라 기업이 준공한 다리인데, 이역만리 튀르키예에서 한국의 흔적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다리를 건넌 뒤 한 시간쯤 더 달려 차나칼레에 입성한 뒤 본격적인 차나칼레 구경에 나섰지만, 아쉽게도 동절기라 계획했던 치멘릭 성은 문을 닫아 내일로 미루고 차나칼레 시내 구경을 했다.

차나칼레 시계탑

 

작은 도시지만 10만이 넘는 인구의 도시인 차나칼레는 본래 트로이 유적지를 보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도시로 일정에 넣어 큰 기대는 없었지만 바다가 있다 보니 하루쯤은 휴양 목적으로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나칼레는 트로이 유적지로 유명해서 그런지 도심에는 트로이 목마가 있는데, 이 트로이 목마는 실제 '트로이' 영화에서 사용된 소품으로 촬영 후 차나칼레시에 기증하여 해안 공원에 조성되어 있다.

 

여행을 하면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아 석양 볼 기회도 많았는데, 날씨도 좋았지만 해안가에서 여유로움 속 석양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걸어서 그런지 아름답게 느껴졌다.

 

작은 도시라 주변에는 관광할만한 장소가 없어 아쉽게도 시내와 야경 구경을 한 뒤 숙소로 돌아와 쉬고 그다음 날 트로이 유적지로 이동하기 전 어제 보지 못한 치멘릭 성에 방문했다.

우리나라와는 양이 다른 튀르키예 감자튀김. 66리라 가격의 감자튀김 상자와 튀김을 샀는데 생각한 것보다 양이 매우 많아 다 먹지 못했다

 

치멘릭 성(Cimenlik Castle)
1462-1463년 정복자 메흐메트 2세가 당시 콘스탄티노플이 유럽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본 후 해협을 방어하기 위해 좁은 해협에 건설한 성이다.

치멘릭 성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이 오스만 제국 수도의 이스탄불을 점령하고자 다르다넬스 해협의 길목에 있는 갈리폴리 반도를 공격할 때 보루로 사용된 건물이다.
당시 열세였던 오스만 제국이 승리해 본토까지의 점령을 막을 수 있었으며, 튀르키예의 국부인 아타튀르크도 이 전투에 참전하여 능력을 보이며 장군으로 진급되었다고 한다.

당시 영국의 해군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오점으로 기록된 장소이기도 하다.

입장료:
성인 200리라
카메라 120리라
*뮤지엄패스 이용 불가

 

치멘릭 성은 군사 해양 박물관 부지 안에 있어 군사시설로 포함되어서 그런지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다르게 뮤지엄패스 사용이 불가했고, 군사시설답게 정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 또한 해군 사병이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갈리폴리 전투로 튀르키예인들의 역사와 민족 인식을 심게 된 시발점이라 그런지 방문 당시 수학여행으로 온 학생들뿐만 아니라 국내 단체투어로 온 튀르키예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군사시설로 분류되어서 그런지 일반 박물관과는 다르게 입구부터 통제되고 있다

 

치멘릭 성으로 가는 길에는 갈리폴리 전투 당시 사용된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1,2차 세계대전 때 활약한 독일의 유명한 유보트
해군 시설이라 곳곳에 닷이 전시되어 있었다

 

성 안으로 들어가면 내성 안에도 무기가 전시되어 있고 건물 내부에는 치멘릭 성의 역사, 오스만·튀르키예 해군 역사 및 갈리폴리 전투에 대한 전투 묘사가 되어 있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경쾌한 튀르키예 군가 - Ceddin Deddin

치멘릭 성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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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건물에는 갈리폴리 전투와 오스만 해군 역사에 대한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1층에는 갈리폴리 전투 당시 사용한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기뢰

 

2층에는 오스만 제국 해군 역사실로,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였던 술레이만 대제 시절 해군 제독으로 프레베자 해전을 승리로 이끈 바르바로스 하이레딘 파샤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당시 유럽 세계에서는 붉은 수염이라고 알려진 바르바로스 하이레딘 파샤, 오스만 제국의 지중해 장악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갈리폴리 전투는 양측 피해규모가 도합 50만 명이 넘을 정도로 모두에게 있어 잔혹한 전투였는데, 이 전투 참전으로 참혹한 결과를 맞은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은 매년 4월 25일 앤잭데이(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를 통해 이 전투의 참전을 기리고 있다.

 

튀르키예 또한 갈리폴리 전투지에서 이러한 잔혹함을 잊지 않기 위해 전시실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전달하고 있었다.

 

건물 외부 곳곳에도 전투 흔적이 남아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안쪽에는 요새로 사용된 건물이 있는데 현재는 갈리폴리 전투 영상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외에도 갈리폴리 출신이자 피리 레이스 지도로 유명한 피리 레이스(피리 제독) 전시실도 있다.

 

피리 레이스 지도는 미스터리로 자주 언급되곤 하는데, 18세기에나 발견되는 남극이 16세기에 제작된 그의 지도에서도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16세기 무렵 가장 정확한 아메리카 지도를 그려낸 것으로 유명한 피리 레이스

 

치멘릭 성을 나오면 좌측에 뻥 뚫린 에게해가 보인다.

 

반대편에는 치멘릭과 쌍을 이루는 킬리트바히르 성이 보이는데, 여행 첫날인 도하에서부터 줄곧 바다를 보았지만 탁 트여있어 그런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 여유롭게 구경하다 나왔다.

차나칼레 선착장

 

마무리

튀르키예인들에게 있어서는 갈리폴리 전투의 승리로 지금의 튀르키예 공화국이 될 수 있던 역사적인 장소로 의미 있을 수 있겠지만 외국인에게 있어서 차나칼레는 트로이 유적지를 방문하지 않는 이상 다른 목적으로 방문해야 할 매력은 느끼지 못했다.

 

 

위치:

○치멘릭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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