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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카파도키아 (Cappadocia)

[튀르키예 - 카파도키아3] 데린쿠유 지하도시

by 떠나볼까 2024.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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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7일 차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 다음으로 보고 싶었던 데린쿠유 지하도시

 

여행 전 여느 점심시간에 볼거리를 찾다 넷플릭스에 있는 '고대의 아포칼립스' 다큐멘터리를 찾게 되었고, 데린쿠유 편을 본 뒤 가고 싶어 위치를 찾아보았는데, 마침 이번 튀르키예 여행에서 방문 예정이었던 카파도키아 지역에 있어 오게 된 장소였다.

 

데린쿠유 지하도시(Derinkuyu underground city)
1963년 인근 한 지역 주민이 집을 개조하던 중 수리 중인 벽 뒤에 또 다른 방과 지하도시로 연결된 통로를 발견하게 되면서 세상 밖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깊이 85미터에 지하 8층으로 구성, 2만 명이 거주 가능한 카파도키아 지하도시 중 최대 규모이다.

기원에 대해 여전히 논쟁이 있지만 튀르키예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기원전 8-7세기 프리기아인들에 의해 지어졌다고 하며, 본래 지하도시 위에 마을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깊은 우물'의 뜻을 가지고 있는 데린쿠유는 카파도키아에 있는 여느 동굴들처럼 응회암으로 구성돼 있어 쉽게 굴을 파 집을 만들 수 있었는데, 비잔틴 시대에 오늘날의 모습이 형성되었으며 비잔틴-아랍 전쟁 시기 아랍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하도시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환기구, 우물, 집, 주방, 식당, 빵집, 교회, 예배당 그리고 묘지 등의 웬만한 시설은 다 갖추고 있고, 심지어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구역마다 거대한 돌이 설치돼 있어 차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 사람이 영구적으로 거주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게 없는 것으로 보아 짐작건대 위에 있는 마을에서 생활을 하다 위협을 느끼면 지하도시로 피한 것 같다.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또 다른 지하도시 카이마클리(Kaymakli)와도 연결돼 있다 하며, 현재 지하도시의 절반만이 관광객들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뮤지엄패스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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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레메에서 약 한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늦은 오후에 방문해서 그런지 관광객들이 없어 쾌적한 공간에서 관광할 수 있었다.

데린쿠유 지하도시 입구
데린쿠유 지하도시 지도

 

들어가기 전 데린쿠유 규모를 알아 안에서 길을 헤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가는 곳마다 빨간색 화살표시가 있어 길을 잃어버릴 걱정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데린쿠유 지하도시 안에는 이렇게 빨간색 화살표로 가는 방향을 안내해 길 잃을 걱정을 할 필요 없다

 

과거 이만 명이 살아갈 수 있는 규모의 지하도시였던 만큼 들어갈수록 주거 공간 외 주방, 식료품 저장소 및 포도주 저장소 등의 시설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 시대는 전기로 불을 밝힐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러한 환경조차 아니었기 때문에 확실히 일반 주거 공간으로 사용된 것보다는 피난용으로 사용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좀 더 강하게 들었다.

 

식료품 저장소

 

 

 

내려갈수록 길이 좁고 통풍이 잘 안돼 밖과는 다르게 더웠다.

 

가는 길목 사이사이에는 둥그런 큰 돌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는 외부 침입 시 길을 차단하기 위한 용도로 배치된 것이다.

사람 한 명 지나가기도 쉽지 않은 이 좁은 통로에 이 큰 돌을 어떻게 가지고 왔는지 궁금했지만 이제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정확히 알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내려갔다.

출처: By © Nevit Dilmen,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1074216

 

갱도와 같은 좁은 통로를 따라 관광객이 내려갈 수 있는 최대 깊이인 30미터의 지하 하층부까지 내려오면 위층보다는 넓은 공간이 나온다. 지하와 가까워져서 그런지 위에는 없던 묘지가 있었고, 내려갈수록 필요한 공기 순환을 위해 환기구 장소 등이 있었다.

아래에서 환기구를 통해 위를 보니 꽤 많이 내려왔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묘지

 

돌아가려고 할 때쯤 한국인 단체 투어가 와 인솔하는 가이드가 주변 장소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어 본의 아니게 설명을 들으며 어떤 장소인지 알 수 있었는데, 당시 가이드 말에 따르면 이곳은 그 모습이 십자가 형상을 하고 있어 예배 장소로 추정된다는 장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체 투어가 간 뒤 다시 한번 보았을 때 설명 전에는 몰랐던 십자가 형상의 공간이 그려져 늦게라도 알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이 든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설명판 또는 오디오 가이드 제공이 안 되고 있다는 점에서 놓치는 부분이 많아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후 올라가면서는 최대한 놓치지 않고 의미를 두고 보려고 노력하였으나 정보의 한계로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정확히 어떤 장소로 사용되었는지 알 순 없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것보다 나만의 상상 속에서 그려지는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는 의미 있었다.

대피소였던 만큼 평소에는 보관 장소로 사용하다 전시에는 함정으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둘러보다 보면 빛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빛이 있어 아마 거주 공간이나 학습방으로 사용되었을 것 같다
이만 명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물 공급은 필수다

 

학교

지상과 가까워지고 있는 환기구
가축을 기른 장소

 

아래로 내려갈수록 바람이 통하지 않아 공기도 탁하고 더웠는데, 데린쿠유를 직접 경험하고 나와 태양 아래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이곳은 확실히 주거용이 아닌 대피용으로 사용되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하도시의 생명줄인 환기구, 위에서 보았을 땐 아무것도 아니지만 아래서 보았을 때는 산소를 공급하기 때문에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데린쿠유 지하도시 맞은편에는 '성 테오도로스 트리온 교회'가 있다.

데린쿠유는 그리스 정착지 중 한 곳으로,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이후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 정책에 따라 이곳에 살던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로 돌아가기 전까지 살던 장소였다.

 

그리스 정착지였기 때문에 이곳에 살던 주민이 지은 교회는 아니고 19세기 산 스테파노 조약에 따라 전쟁 배상금을 대가로 지어진 교회인데, 튀르키예인 입장에서는 치욕의 역사로 지어진 건물로 인식되어 있어 그런지 관리되고 있지 않았고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서울 석촌에 있는 삼전도비와 같은 존재일까?

 

틈 사이로 본 내부는 꽤 아름다워 관리돼 관광객에 개방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

출처: By Klaus-Peter Simon - Own work, CC BY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048477

 

마무리

데린쿠유 지하도시를 보고 나왔을 땐 다른 관광지를 갈 수 있는 시간이 안 돼 귀뮈쉬레르 수도원(Gümüşler Monastery)과 니데성을 방문하지 못했다.

이곳을 함께 방문할 계획이라면 오전에 이동해 여유롭게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관람 소요시간: 약 1시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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