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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이스탄불 (Istanbul)

[튀르키예 - 이스탄불1] 이스탄불 첫날 주변 구경

by 떠나볼까 202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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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3일 차

 

여행하며 항상 느끼지만 새로운 나라에 가면 휴양지를 제외하고는 며칠은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튀르키예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숙소에 짐을 푼 후 바로 관광하기보다는 튀르키예라는 나라는 어떤지 분위기를 느끼고자 주변 구경을 하기로 했다.

숙소 위치는 아야 소피아 전망이 있는 구시가지 중심 주변으로 잡으려 했으나 막상 호텔에 오면 안에서 쉴 것만 같아 위치와 교통수단을 고려해 악사라이역 주변 호텔로 잡았는데, 개인적으로 위치에 만족해 렌터카 여행 후 마지막 날 이스탄불에 돌아와 다시 투숙했을 때도 이 주변에 잡았다.


숙소에서 구시가지 중심 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이전에 방문했던 이슬람 국가인 우즈벡과 카자흐스탄에서 본 양식과는 다른 튀르키예 특유의 모스크들이 군데군데 있었는데, 첨탑을 보며 다시 한번 튀르키예에 왔다는 게 실감 났다.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반바지를 입고 있어 밖에서 구경만 했다😢

랄렐리 모스크

 
아야 소피아로 가는 길 옆에 사람들이 많아 어딘가 찾아보니 그랜드 바자르가 안쪽에 있어 가는 길에 들렀다.

 

그랜드 바자르(카팔르차르쉬)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바자르 중 하나로, 66개의 거리와 4,000개 이상의 상점이 있어 매일 25만 명에서 40만 명이 방문하는 이스탄불 명소 중 한 곳이다.
튀르키예어로 카팔르차르쉬(Kapalıçarşı)로 불리며 '지붕으로 덮인 시장'을 뜻한다. 
*바자르는 중세 페르시아어 'Baha-Char' 즉, 물건의 가격이 정해지는 장소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에서 유래하였으며, 아랍어에서는 수크(Souq)로 불린다. (도하에 있는 수크 와키프(Souq Waqif)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개념의 시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바자회라는 용어도 페르시아어 bazar와 한자 會가 결합돼 만들어진 합성어이다)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킨 술탄 메흐메트 2세의 명령에 따라 1455~1461년의 기간을 통해 건설된 카팔르차르슈는 16세기 술탄 술레이만 시기 증축, 1894년 대지진 및 화재 등으로 인해 재건축되는 등 여러 세기에 걸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재는 22개의 문과 12개의 주요 건물로 이뤄져 있다.

 

이스탄불에 오기 전 도하에서 2일 동안 있었는데, 그곳에서 본 수크 와키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의 시장이었다. 시장 내부가 넓어 모두 돌아보진 않았지만 많은 상점들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여행 첫날이라 물가도 모르고 3주라는 시간이 남아 있어 가격은 따로 보지 않고 분위기만 즐기고 나중에 다시 오려고 계획했지만 여행하다 보니 일정상 다시 방문할 기회가 없어 이곳에서 물건을 구매하진 못했다.

 

곳곳에 정찰제로 판매하는 상점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면 이곳에서 구매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랜드 바자르 구경 후 오른쪽 끝으로 나오면 바로 옆에 누루오스마니예 모스크가 있고, 그 위로 올라가면 콘스탄티누스 기둥이 있다.

누루오스마니예 모스크

 

콘스탄티누스 기둥 (Column of Constantine)
밀라노 칙령으로 유명한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30년 5월 11일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할 때 로마의 아폴로 신전에 있던 기둥을 콘스탄틴 광장으로 옮겨와 세운 기둥이다.

로마와 마찬가지로 콘스탄티노플도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세워졌는데, 로마제국의 옛 수도와 새 수도의 공통된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콘스탄티누스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로마에 있었을 땐 기둥 꼭대기에 아폴로 조각상이 있었으나 이스탄불로 옮기면서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신의 조각상으로 대체되었다.
기둥은 1081년 번개를 맞아 조각품과 함께 파괴, 알렉시오스 1세의 명령에 따라 큰 십자가가 있는 기둥머리를 설치되었으나 1453년 오스만 제국에 멸망된 후 십자가가 철거되었다.

오스만 시대에 들어서는 화재로 심하게 손상되었고 기둥을 보수하기 위해 술탄 무스타파 2세의 명령에 따라 기둥 주위에 철 고리가 설치돼 그 이후부터 챔벨리타쉬(Çemberlitaş)로 불렸다고 한다.

 

현재는 옛 상징성을 잃은 채 혼자 우뚝 서있는 콘스탄티누스 기둥은 관광지 느낌보다는 시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큰 볼거리는 없지만 17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비잔틴 시대의 건축물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랜드 바자르와 누루오스마니예 모스크와 함께 비잔틴 제국의 중심이었던 이곳에 와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아야 소피아 & 블루 모스크

 

이번 튀르키예 여행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아야 소피아(하기스 소피아)!!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점령 후에도 파괴하지 않고 개조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는데, 반바지를 입어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지만 첫날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있는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오스만 제국의 기술력이 기독교에 뒤처지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하는데, 외관은 확실히 블루 모스크가 더 예뻤다.

 

두 제국을 상징하던 사원을 구경 후 위로 가던 길에 톱카프 궁전 입구가 있었는데, 운영 시간이 끝났는지 사람이 없었다. 

 

모스크와 궁전을 지나 갈라타 다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에미뇌뉘 수상버스역 앞에서 보스포루스 해협과 함께 신시가지 야경을 볼 수 있어 잠시 구경했다.

갈라타 다리 가는 길, 어느 곳에 가나 사람이 많아 전혀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맞은편에 있는 예니 모스크

 

갈라타 다리 아래에는 식당들이 즐비한데, 처음에는 아래로만 가야 하는 줄 알고 이동했다가 계단 통해 위로 올라갔다.

다리 위에는 낚시하는 튀르키예 아저씨들을 구경할 수 있는데, 아는 사람끼리 대화하는 건진 몰라도 일종의 사교 활동으로 이곳에 나와 매일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재미있어 보였다.

다리 위에 낚시줄들이 보인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온 뒤 갈라타 탑으로 올라가는 길이 뒤편이라 그런지 상점과 사람도 없고 경사가 졌지만 올라가 보니 갈라타 탑 주변이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올라왔던 길 반대편이 메인 도로인지 상점 속 많은 인파로 북적북적했다.

이곳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첫날이어서 그런지 맛도 없었고 비싸 별로여서 카페는 괜찮지만 식사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마무리

구시가지에서 도보로 무난히 이동할 수 있는 위치가 개인적으로는 갈라타 탑까지라고 생각해 첫날 튀르키예에 도착했다면 시간적 여유를 갖고 한 바퀴 돌며 어떤 나라인지 느껴보는 것을 추천한다.

*돌아올 때는 트램 또는 버스를 타면 오면 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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